PUC 야영회에서 만난 사람
안락한 환경을 떠나 태평양 건너 낯선 나라로 가도록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산 중턱에 위치한 PUC(Pacific Union College, 미국 나파에 있는 대학)의 하늘은 눈이 시릴 만큼 푸르고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고 키가 크고 우람한 나무들은 140여 년이라는 이 학교의 긴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배롱나무의 붉은 꽃구름은 화려했고 밤이면 순금빛 별들이 선명하게 하늘을 가득 덮었다. 캠퍼스 어디에나 지천으로 열린 잘 익은 블랙베리는 새벽 산책길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 주는 보너스였다. 서부 연합 야영회의 은혜로운 집회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최고의 날씨와 최상의 쾌적한 환경이었다.남편과 함께 이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900여 명의 많은 인원이 등록했다. 연합 야영회는 미 대륙 서부의 넓은 지역에 흩어져 지내는 교우들이 일 년에 한 번 반갑게 만나 친교를 나누고 풍성한 영적 양식으로 하늘을 향해 한 치 쑥 자라는 특별한 집회다. 이번에는 특히 어린아이를 데려온 젊은 부모와 청년의 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내일의 교회를 이끌어 가며 신앙의 감화력으로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고 감사했다.새벽 기도회를 시작으로 오전과 오후, 저녁까지 이어지는 집회마다 잘 준비된 말씀을 통해 하늘의 보화가 쏟아졌고, 청중은 야영회의 총주제에 맞게 ‘남은 자손의 비전과 사명’으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이곳에서 충전된 강력한 영적 에너지가 미주 곳곳에 신앙 부흥으로 퍼져 나가길 간절히 소망했다.우연한 기회에 PUC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젊은 한인 교수를 만났다. 조직신학 분야의 김영천 교수였다.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PUC와 한국의 특별한 선교 인연에 관한 이야기였다.갑작스러운 제안1890년 무렵, 이곳에 유학 온 일본인 학생 오코히라 데루히코 군이 있었다. 그는 수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대학 교회의 금요일 저녁 예배에서 일본 복음화의 막중한 사명과 무거운 부담감을 안고 있던 오코히라는 일본에 선교사로 함께 갈 사람을 찾는 호소를 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일순간 침묵이 흘렀고 청중 가운데 자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당시 PUC의 전신인 힐즈버그(Healdsburg, 1882) 대학의 2대 학장이었던 윌리엄 그레인저(William Grainger) 박사의 부인 엘리자베스 그레인저가 그 호소를 들었고 그녀가 남편에게 권고해 그들 부부가 일본으로 가기로 결심했다.그리하여 그레인저 박사는 학장직을 내려놓고 1896년 미지의 땅 동양으로 부인과 함께 선교사로 떠났다. 윌리엄 그레인저 선교사는 일본에서 3년을 봉사한 후 안타깝게도 55세의 나이에 병을 얻어 사망하고 말았다. 그는 그 짧은 기간 동안 4명을 전도했으며 그중 한 명이 구니야 히데 목사였다. 구니야 히데 목사는 한국 최초의 재림 신자인 이응현과 손흥조 두 사람을 전도해 침례를 준 인물이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한국 재림교회 복음의 역사가 이곳 PUC에서 시작된 셈이기 때문이다. 한국 첫 재림 신자가 침례받은 일본 고베의 누노비키 폭포를 최근에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PUC에서 그 영적 시원지(始源地)를 확인한 셈이다. 한국 선교의 씨앗이 발아한 이곳에서 해마다 수백 명이 참여하는 미주 서부 한인 연합 야영회가 열리고 있다. 한 알의 밀알이 된 이 대학 출신의 순교자를 통해 천 배, 만 배로 복음의 열매가 맺히고 있다. 우리 부부는 PUC 총장을 만났고 선교사를 파송하여 한국에 재림 기별을 전해 준 이 대학에 감사를 표했다. 깊은 산속 외딴곳에 위치해 있지만 재림교단 초기에 설립된 이 학교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젊은 일꾼들을 길러 내고 있기에 학교의 발전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한국 청년들을 이곳으로 많이 보내 달라는 총장의 부탁도 마음에 담았다.PUC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사실은 그레인저 선교사의 이야기를 전해 준 김영천 교수도 한국 재림교회의 선구자의 후손이라는 점이었다. 구니야 히데 목사에게 침례받은 두 사람 중 이응현 씨는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갔고, 손흥조 씨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임기반 씨를 전도했다. 임기반 씨는 도산 안창호와 각별한 사이였고 그와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었다. 그는 동생 임국진 씨를 전도하여 재림 신자가 되게 했으며 김영천 교수는 바로 이 임국진 씨의 딸인 임옥순 여사의 손자였다. 임옥순 여사의 아들은 평생을 미국에서 목회한 김원태 목사이다. 한국 재림교회의 선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 미국에서 젊은 신학도들을 길러 내고 있는 김 교수 가족은 마치 그레인저 선교사에게 진 빚을 갚는 듯해 가슴이 뭉클했다.어둠을 뚫고 동료들을 향해 금요일 저녁, 김 교수 가정에 초대를 받았다. 그의 부인은 삼육대학교 영문학과 출신이었고 2세가 태어나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잘 차린 안식일 환영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다시 한번 이 캠퍼스에 스며 있는 고귀한 정신을 생각해 보았다. 일본 유학생 오코히라는 어떤 마음으로 담대한 제안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레인저 학장 부부는 오코히라 군의 선교사 지원 호소를 듣고 어떤 열정이 솟아올라 멀고 먼 타국으로 떠날 결심을 했을까? 존경받는 지위를 내려놓고 안락한 환경을 떠나 태평양 건너 낯선 나라로 가도록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그것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분이 하늘 보좌를 내려놓고 먼지 같은 이 땅에 피조물의 옷을 입고 첫 선교사가 되어 오신 예수님의 정신일 것이다. 천천만만의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 세계를 지휘하던 분이 낮고 낮은 존재가 되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겸손과 희생을 본받은 모습이다. 세상 모든 사람의 희망이요 소망인 구주를 땅끝까지 전하여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고자 한 뜨거운 인류애이다.문득 예수의 생애를 영감적으로 서술한 『시대의 소망』의 한 단락이 떠올랐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가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밤중에 달려가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자신들과 동행한 분이 누구인지 몰랐으나 해가 저물어 함께 다락방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을 때 그들은 그분이 부활하신 구주임을 알아차렸다. 그 즉시 그들은 그곳을 떠나 캄캄한 어둠을 뚫고 동료들을 향해 달려갔다.“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그들은 피곤과 배고픔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고 도성에 있는 제자들에게 이 기별을 전하기 위해 왔던 길을 급히 되돌아갔다. 그들은 가파른 곳은 기어오르고 미끄러운 바위에서 구르기도 하면서 가능한 한 빨리 가고자 하였다. …밤은 어두웠으나 의의 태양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 …그들은 세상이 여태 들어 보지 못한 최고의 기별 곧 그때로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인간 가족에게 희망이 될 기쁜 소식을 가지고 가고 있었다.”인간의 한계 상황인 죽음의 극복을 목격한 제자들은 그 순간 이후로 목숨도 아끼지 않는 복음 전도자들이 되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국경을 넘고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길이 되었다. 편안한 환경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복음을 들고 나가 생명까지 바친 믿음의 선구자들의 헌신을 떠올리며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열정적인 복음 전도의 도구가 되길 소망하며 야영회 장소를 떠나왔다.엠마오의 제자들처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 내가 달려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새해를 맞이하며 깊이 생각해 본다.- 권영순 목회학 박사, 수필가 -